프로그래머스 데브 코스 1주차 후기

August 07, 2021

정말 큰 마음을 먹고 결심한 일이었다. 최근 10년, 아니 20년을 돌아봐도 이번 만큼 뜬금 없는 결정을 내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Anti-이공계를 부르짖으며 평생을 살아온 내가 지난 몇 년간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서 내린 결정이 개발을 배우겠다는 것이었으니.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프로그래밍 경험은 나원이와 비슷했다. (나원이는 올해 두 살이 된 조카 이름이다) 아무 것도 몰랐다는 얘기다. 올초 서점에 가서 제일 두꺼운 자바스크립트 책 한 권을 샀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구글과 유튜브를 통해 개발 신생아로서 상반기를 보냈다.

혼자서는 더 이상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사회성 측면에서도. 최소한의 코테, 최소한의 자바스크립트, 최소한의 프로그래밍 지식과 경험만을 가지고 어쩌다 알게 된 부트캠프형 교육 코스에 지원했다. 운 좋게도 2021년 하반기는 데브 코스로 시작하게 되었다.

엊그제 OT를 한 것 같은데 일주일이 정신 없이 지나갔다.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2021년이었건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올해 들어 이번 주 만큼 바쁘게 살았던 때가 없었다. 하루가 이렇게 짧았나. 지난 6개월을 반성하게 된다. 몇 가지 중구난방으로 느낀 점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TIL 그리고 WIF

Today I Learned를 적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겠지만 Weekly I Felt가 되어버렸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아직 학습의 ‘정도’를 설정에 있어서 적합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TIL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그날 학습한 내용의 요약 정리에 가까운 것 같다. 무언가를 요약한다는 것은 원래의 (방대한) 내용을 충분히 학습하고 이해한 뒤에 간추린 핵심 내용이어야 한다. 충분한 학습이 없는 요약은 그냥 적게 대충 공부하는 것일 뿐이니까.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경우는 복습 차원에서 슬쩍 훑고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내가 아는 게 없다. 오늘 강의에 새로운 내용이 10개 나왔다고 치자. 어차피 내가 그 내용들 중 완벽하게 알고있는 것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 처음 들어보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다. 10개를 다 공부하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짧게 정리하고 넘어가기엔 내게 쌓이는 지식이 없다. 그 둘 사이의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야 5개월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첫 주는 실패다. 8월에는 내게 가장 효율적인 학습 페이스를 설정하고, 적합한 TIL 작성 방향을 찾는 것이 목표다.

소속감

어딘가에 소속감을 가진 지 정말 오래됐다. 학교를 10년만에 졸업했지만 실질적인 학교생활은 이미 몇 년 전에 끝났다. 여긴 120 + @명의 사람들이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모여있다. 아직 이름도 얼굴도 거의 알지 못하고, 5개월 뒤에 어느 정도로 가까워질 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만든다.

소속감은 책임감을 자극한다. 책임감은 성실성을 요구하고, 그 성실함은 성장으로 귀결된다 라는 말도 안되는 명언충 같은 표현을 써봤는데 새벽 4시라 그렇다. 무튼 소속이 생겼기에 이 시간까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게 되었다는 대충 그런 얘기다.

INFJ

자기 소개를 하다보니 오랜만에 MBTI를 꺼냈는데 마침 생각나는 내용이 있다. 나는, INFJ는 인생의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걱정과 고민과 망상을 반복하며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런데 학습 내용을 따라가기 급급하여 밥 먹는 시간, 잠 잘 시간 외에는 딴 짓을 할 겨를이 없다. 보고 읽고 정리하고 외워도 여전히 새롭게 공부할 내용이 날 기다린다.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비록 눈은 따갑고 허리는 아프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을 차단하니 생각이 건강해지는 아이러니. INFJ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할 일이 터져나갈 때 비로소 해소된다.

동료

새로운 집단에 대해 내가 늘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나보다 뛰어난 동료들만 모여있는 집단’인데 사실 안타깝게도 그런 집단에서 날 필요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쨌든 일주일 간 데브 코스에서 느낀 점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프로그래밍을 학습하는 데 있어서 나보다 관련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절대 다수일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런 집단에 속하는 것의 장점은 우선 내게는 배울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아는 게 없는 환경에 처한 적은 어릴 적 유학을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 상 애매하게 아는 사람보다 깨끗하게 모르는 사람이 더 빠르게 많이 흡수한다.

그리고 뒤처진다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배로 노력하게 만든다. 그 이유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인지, 남들보다 못한다는 열등감인지, 언젠가는 뛰어넘겠다는 경쟁심인지, 다 함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 의식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 열심히 하면 성장해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Atmosphere

동료들에 대해 너무 비인간적으로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누구보다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 많다.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그 땐 무엇보다 그 곳의 기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재밌기도 하고.

개발, 컴퓨터 공학, 프로그래밍, IT와는 접점이 없는 생활 반경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보니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곳의 기류는 사실 내게 낯설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며 가장 궁금했고, 또한 가장 절실하게 경험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중이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나는 이 세계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꽤 있는 것 같다. 5개월 뒤에는 나도 one of them이 되어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쉬운 부분이다. 상대방 눈을 보고 얘기해야 기류를 제대로 캐치할 수 있을 텐데, ZOOM으로 아무리 쳐다봐봤자 내가 보고 있는 건 모니터 아니면 카메라 렌즈다.

너무 내가 얻어갈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이 친구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마무리

쓰다보니 5시다. 두서 없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써내려 갔는데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있다. 앞으로는 절대 글을 새벽에 쓰지 않아야겠다는 것.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Profile picture

42KIM A person trying to create something.
👉Git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