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스 데브 코스 2주차 후기

August 14, 2021

고통은 쾌감을 동반한다.

하등 쓸 데 없는 TMI로 이번 주 WIF를 시작해본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편이라 고어물은 절대 찾아서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내 신체 (그리고 정신)에 가해지는 고통에 대해서는 관대하다고 해야하나. 심지어 살면서 겪었던 외과적 수술들, 사랑니 발치, 화생방 등등의 고통에서는 오히려 일정량의 쾌감이 느껴진다고 늘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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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자바스크립트로 이것 저것 시도해보며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니가? 감히?라며 등장한 함수형 프로그래밍에 후드려 맞은 일주일이 되어버렸다.

2주 차는 유인동 멘토님의 함수형 프로그래밍 교육이 이뤄졌다. 나는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 분야(?)에서 꽤 유명하신 분인듯 했다. 사실 다른 개발자도 아무도 모른다. (아, 하트시그널에 나왔던 그 사람이 개발자였다는 사실은 안다) 앞으로는 훌륭한 개발자들의 행보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아무튼.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내게, 함수형 프로그래밍의 첫 인상은 ‘신기하네’였다. 내가 지난 몇 달간 써왔던 자바스크립트와는 전혀 다른 언어 같기도 했다. 한 줄 두 줄씩 리팩토링을 하며 코드가 줄어들고 정리될 때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알고리즘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었을 때의 쾌감과 약간 비슷하지만, 결과가 나오는 순간보다 그 과정을 정리함에 있어서 느껴지는 쾌감에 좀 더 가까웠다.

그렇게 신기한 강의를 들으며 직접 함수형 프로그래밍을 시전해볼 생각에 살짝 들떠있었는데 문제를 풀어보려는 순간 머리가 멈췄고, 정신차려 보니 토요일이 되어 있었다. 힘겹게 개별 함수의 기능까지는 해석할 수 있었지만, 함수형 ‘사고’ 자체가 전혀 되질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함수형 프로그래밍의 존재를 알 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리가. 풀리지도, 풀 수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며칠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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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tmi를 이어가자면, 사실 지난 날의 고통 자체가 쾌감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로 고통 === 쾌감인 성향의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아닌 것으로…) 돌이켜보면 쾌감은 고통의 순간이 끝남과 동시에 몰려왔다. 그리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쾌감의 체감은 더욱 커진다. 물 속에서 오랫동안 잠수를 하며 1초만 더, 1초만 더 버티다가 수면 위의 산소를 들이마시는 순간이 그렇다. 아마 그 순간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능한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하려는 것 같은데 이런 습관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적어도 학습에 있어서는 그렇다. 오래 붙잡고 버티고 있을 때 해결되는 문제가 있고, 그 시간에 차라리 정답을 참고해서 공부를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때도 있다. 아니면 차라리 나가서 놀던가,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효율적 학습 페이스에 대해 고민했던 지난 주 WIF이 무색한 일주일을 보냈다.

사실 인생의 효율을 따지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다. 만약 효율을 찾았다면 그렇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이 곳에서, 이 기간 동안 개발을 공부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효율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보다 빠르게 쾌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고통을 오래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극복할 방안을 빠르게 모색하는 것임을 잊지말자. 다음주에는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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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을 새벽에 쓰지 않기로 했는데 오늘도 4시다. 그런데 아직도 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있다. 공부 반, 잡담 반인 것 같지만 고통스러운 일주일 끝에 찾아온 소소한 쾌감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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